멸치후리는노래

멸치후리는노래는 멸치잡이를 할 때 멸치가 든 그물을 후리면서 부르는 어업노동요이다.

멸치후리는노래는 멸치잡이를 할 때 멸치가 든 그물을 후리면서 부르는 어업노동요이다. 제주시 구좌읍 동김녕리에서 전해져 오는 멸치후리는 노래가 1986년 제주특별자치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제주도에서 멸치 작업이 유명했던 곳은 동김녕리를 중심으로 월정, 함덕, 곽지, 협재, 금능, 화순, 모슬포, 표선, 신양, 이호, 삼양 해수욕장 등이다. 이들 지역의 특징은 모래밭이 널따랗게 형성된 해안 마을로 바닷가에 멸치 떼가 들어오면 멸치 잡는 작업이 흥성스럽게 이루어졌다.

멸치후리는노래를 멜후림소리 또는 멜후리는소리라고도 한다. 멸치를 제주 방언으로 멜이라 하며, 멜을 후린다, 거린다라는 말은 멸치를 물에서 건지다, 뜨다를 의미한다. 멸치잡이는 음력 3월말부터 시작해서 9월까지 이루어진다. 초저녁에 시작한 멸치잡이는 새벽녘이 되어야 끝이 난다.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한 작업이기에 멸치 후리는 작업을 위해서 마을마다 계모임을 조직하였고, 이모임을 접, 또는 그물접이라고 했다. 그물접은 배와 그물을 함께 준비하여 공동 작업을 하고 공동 분배를 하는 노동공동체이면서, 풍어 기원의 ‘그물코ᄉᆞ[그물고사]’, 또는 ‘멜굿’을 함께 지내는 신앙 공동체이기도 하다. 멸치잡이를 한번 나서면 그물접마다 보통 10척 이상의 배가 동원된다. 이때 동원되는 배들은 그 기능에 따라 당선, 망선, 닻배, 떼배(테우)로 구분되는데, 당선은 멸치 떼를 확인하는 작업을 지휘하는 배로 멸치 작업 경험이 많은 사람이 승선한다. 망선은 그물을 실은 큰 배로 배에는 그물을 끌어당겨 감는 마개가 설치되어 있고, 보통 10명 정도 인원이 승선한다. 그리고 닻배는 그물을 놓고 멸치 떼를 가두고 그물을 감아올리는 역할을 한다. 테우는 보통 4척에서 6척이 출어하고 멸치 잡는 작업이 끝나면 그물과 멸치를 실어나르는 기능을 맡는다.

멸치잡이는 1960년대 중반부터는 발동선을 이용한 정치망으로 바뀌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고, 노래 역시 일부 가창자에 의해 전승되는 등 그 명맥이 겨우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멸치잡이는 여러 사람이 그물을 잡아당기는 힘든 노동이기 때문에 노래는 힘을 모으고 고된 일을 극복해 낼 수 있게 하는 힘의 원동력이자 생명력이었다. 선소리는 노래를 잘하는 가창자가 선정되어 혼자 부르고, 나머지 일을 하는 사람 모두가 후렴을 붙이게 된다. 그리고 노동이 끝나게 되면 서우젯소리로 한바탕 즐기게 된다. 노래는 멸치를 후리는 작업 현장의 생생한 모습과 함께 노동의 역동성과 풍어의 기쁨을 신명 나게 풀어낸다. 다음은 동김녕리에 사는 기능보유자 김경성의 선소리에 맞춰 김순녀, 한성복이 훗소리를 받아 부른 멸치후리는노래이다.


멸치후리는노래

엉허야 뒤헤야
엉허야 뒤헤야
어기여뒤여 방헤여
엉허야 뒤헤야
동개코라는 은그문여로
엉허야 뒤헤야
서개코는 소여콧딜로
엉허야 뒤헤야
당선에서 멜발을 보고
엉허야 뒤헤야
망선에서 후림을 노라
엉허야 뒤헤야
닷배에서 진을 줴왕
엉허야 뒤헤야
추ᄌᆞ안골 사서안골 궤기
엉허야 뒤헤야
농겡이와당에 다 몰려놓고
엉허야 뒤헤야
앞 궤기는 선진을 놓고
엉허야 뒤헤야
뒷 궤기랑 후진을 놓으라
엉허야 뒤헤야
배터위에 놈덜아
엉허야 뒤헤야
웃베리를 실짝 들르라
엉허야 뒤헤야
한불로 멜나간다
엉허야 뒤헤야
그물코가 삼천코라도
엉허야 뒤헤야
베릿베가 주장이로다
엉허야 뒤헤야

당선에 망선에 봉기를 꼽앙
엉허야 뒤헤야
원공 제장 부인덜은
엉허야 뒤헤야
밥주걱 심어근 춤을 춘다
엉허야 뒤헤야
멜은 날마다 하영 거려다놓고
엉허야 뒤헤야
큰ᄄᆞᆯ 은 비양도로 시집가고
엉허야 뒤헤야
셋ᄄᆞᆯ 은 가파도로 시집가곡
엉허야 뒤헤야
족은ᄄᆞᆯ 은 법환리 시집보내둰
엉허야 뒤헤야
우리 두 늙은이만 이멜 어떵처단ᄒᆞ리
엉허야 뒤헤야
우리 옛조상덜 ᄒᆞ던 일을
엉허야 뒤헤야
잊어불지 말아근 되살려보저
엉허야 뒤헤야
어기여뒤여 방헤여
엉허야 뒤헤야

(서우젯소리로 바꾸어 부름)

어양어양 어양어양 어기여 뒤여로 놀고나가자
아하아양 어허어양 어허어요
풍년왔구나 풍년왔구나 농궹이와당에 돈풍년왔구나
아하아양 어허어양 어허어요
산엔가난 산신대왕 물엔가난 용궁에서낭
이물에라근 이사공아 고물에라근 고사공이여
허릿대밋듸 화장아야 물때점점 늦어나간다

여러 사람이 힘든 멸치잡이를 하면서 힘차게 불렀던 멸치후리는노래를 보면 멸치 후리는 과정과 작업 실태, 만선을 맞이한 기쁨 등이 드러난다. 멸치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노래함으로써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작업 순서를 확인하는 기능까지 엿볼 수 있다. 멸치 작업이 끝나 풍어를 이루게 되면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신명 나는 서우젯소리 가락으로 고된 작업을 마무리하고 노동의 피로를 풀어낸다. 힘든 노동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노래라는 형식을 빌어 험난한 삶을 극복해온 제주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기에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멸치후리는노래는 구좌읍 동김녕리 김경성(여,1929년생)이 1986년 4월 10일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 보유자 사망으로 전수조교였던 한성복을 중심으로 전승 활동을 이어오다가 2019년 12월 28일 한성복(여,1952년생)이 보유자로 지정되면서 전승교육사와 전수장학생을 다수 확보하여 전승교육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현재 보유자는 자신의 건물에 멸치후리는노래 전승관을 마련하여 전수장학생과 일반전수생을 대상으로 전수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해녀박물관 2회 공연, 탐라문화제 및 무형문화대전 출연, 부산 광안리 어방축제 찬조 출연 등 대외 활동을 통해 멸치후리는노래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멸치 후리는 작업은 고되고 힘든 작업이라 부녀자와 아이들은 작업에서 제외되었으나, 후에는 여성들도 함께 거들게 되었고 이를 통해 남녀공동의 노래가 되었다. 현재 보유자도 여성이다. 동김녕리에서 전승되는 멸치후리는노래는 육지지방의 방진그물 작업과 달리 그물로 멸치 떼를 뭍으로 몰아다 그물을 당기는 후릿그물 작업과 연관된 노래라는 점이 독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