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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제주사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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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유형 제목 저자명 소장처 생산연도 조회
6355 고문헌 비변사가 장용외영(壯勇外營)의 친군위 절목(親軍衛節目)에 대해 아뢰었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7년 (1793) 14
6354 고문헌 탐라(耽羅)에서 재실(災實)의 등급을 나눈 것과 요청한 여러 가지 조항은 장계의 내용대로 시행하고 기민(饑民)을 구제하는 방도는 어사가 내려간 뒤에 이치를 따져 장계로 보고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7년 (1793) 11
6353 고문헌 차대(次對)를 오늘로 당겨 정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7년 (1793) 7
6352 고문헌 무과 거자(擧子) 가운데 7, 8십 세 이상으로 입격한 19인은 방목(榜目) 아래에 곧바로 붙여 주고, 80세인 강재형(康載衡)은 충장장(忠壯將)에 단부(單付)하고, 70세 이상인 사람은 실첨지(實僉知)에 의망해 들이라고 명하였다. 이어 연로의 각 읍은 쇄마(刷馬)를 지급해 주고 도신(道臣)은 잔치에 필요한 물품을 주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3
6351 고문헌 《탐라빈흥록(耽羅賓興錄)》을 나누어 주었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3
6350 고문헌 중희당(重熙堂)에서 예조 판서 민종현(閔鍾顯)을 소견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0
6349 고문헌 탐라(耽羅) 사람인 이조 정랑 강성익(康聖翊)과 부장(部將) 박중환(朴重煥)은 하교하면 대령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2
6348 고문헌 사복시가 정언 강성익(康聖翊)의 상소 내용에 대해 회계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2
6347 고문헌 제주 목사 심낙수(沈樂洙)가 장계하여 제주도의 세 고을이 풍재(風災)를 당한 상황을 진달하고, 이어서 절미(折米) 2만여 섬을 배로 수송해 줄 것을 청하였는데, 전라 감사에게 연읍(沿邑)의 곡식 1만 섬을 구획(區劃)하라고 명하고, 이어서 신임 목사 이우현(李禹鉉)에게 5000섬을 10월까지 영운(領運)하며, 대내(大內)에서 내리는 진휼 물자는 본도의 정기적인 부세(賦稅)와 공화(公貨)로 5000포(包)를 채우라고 명하였다. 초봄 이후에 정해진 규식 외에 별도로 한 차례 더 순행하여 넉넉히 음식을 먹여 주라고 명하였다. 또 감사에게 연읍의 백성과 선부(船夫)를 특별히 보살펴 주고 본도(本島)에서 어공(御供)으로 바치는 물건 및 경사(京司)에 바치는 여러 물종을 천신(薦新)에 사용하는 것 외에는 내년 보릿가을까지 감하며, 목사의 행차에 향축을 보내어 제사를 행하게 한 뒤에 배를 출발시키라고 신칙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3
6346 고문헌 전라 감사 이서구(李書九)가 장계하여, “탐라(耽羅)에 이전(移轉)할 곡물은 장흥(長興)에 미(米) 150섬, 조(租) 300섬, 피모(皮牟) 1000섬, 해남(海南)에 미 40섬, 피모 1000섬, 강진(康津)에 미 70섬, 조 200섬, 피모 700섬, 영암(靈巖)에 미 40섬, 조 500섬, 피모 1000섬 등 모두 5000섬을 바다에 가까운 이들 여러 군(郡)에서 마련하여 내도록 한 다음, 별도로 능주 목사(綾州牧使) 조익현(趙翼鉉)을 독운 차사원(督運差使員)으로 정하고 막속(幕屬)을 보내어 감동(監董)하고 신칙해서 신임 목사가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에 넘겨주게 하였습니다. 짐을 실어 나를 인력은 적절히 헤아려 역량(役粮)을 지급하기도 하고 연역(煙役)을 견감해 주기도 하겠으며, 각 배의 사격(沙格)과 감색(監色)은 원래의 뱃삯 외에 넉넉히 값을 더 지급하겠습니다. 해신제(海神祭)의 날짜는 다음 달 13일로 가려 정했으니, 향축(香祝)은 규례를 살펴 마련해서 내려보내게 하소서. 아직 마련해 낼 방도를 정하지 않은 곡식 및 별도로 내리는 진휼 물자 각 5000섬은 내년 봄에 방도를 마련하여 제때에 받아 운송하게 하겠습니다.”라고 보고하였다. 이에 전 승지 겸 검교직각 서영보(徐榮輔)에 대한 투비(投畀)를 용서한 다음 쌀을 실어 내는 지방을 두루 다니며 백성들의 폐막을 살피고 곡물을 조사해서 배가 출발하는 곳까지 운반하게 하고, 이어서 해신에게 제사 지내는 곳에 이르러 헌관이 되어 목욕재계하고 제사를 받들며, 복명(復命)하는 날에도 지나오는 연읍(沿邑)에서 백성들을 위유(慰諭)하고 백성의 고통을 상세히 물어 오게 하며, 해신에게 제사 지내는 날짜와 배가 출발하는 날짜에 대해 다시 관상감 제조로 하여금 자세히 살펴 내려보내게 하라고 명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8
6345 고문헌 중희당(重熙堂)에서 호남 위유사(湖南慰諭使) 서영보(徐榮輔)를 소견하였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2
6344 고문헌 전라도 유학(幼學) 이유곤(李維坤) 등 445명이 상소한 데 대해, 비답을 내렸다. 일성록 한국고전종합DB 정조18년 (179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