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건은 갓을 쓰기 전, 머리카락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이마에 두르는 일종의 머리띠이다. 이를 만드는 장인을 망건장이라 부른다.
개요
망건장은 망건을 제작하는 장인이다. 망건은 말총으로 엮어 갓을 쓰기 전에 상투를 튼 머리카락이 흐트러지지 않게 이마 위를 감쌌던 머리띠의 일종이다. 현재 망건 제작을 전승하고 있는 망건장은 2009년에 지정된 강전향(여, 1943년생)과 2024년 보유자로 인정받은 전영인(여, 1969년생)이 있다.
내용 및 특징
망건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최남선이 지은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 의하면 망건은 본래 명나라에서 유래하여 비단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에 유입되면서 비단 대신 말총으로 재료를 바꾸고 형태가 단순해져 조선식으로 재창조되었다. 조선의 망건은 말 목장이 많았던 제주도나 평안도에서 말총을 채취하여 만들었다. 말총으로 제작한 망건은 매우 독특하고 솜씨도 뛰어나서 일찍부터 중국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기록을 살펴보면 『세종실록』 세종 2년(1420)과 11년(1429년)에 세종이 마미망건(馬尾網巾), 즉 말총으로 만든 망건을 명나라 사신들에게 선물로 하사하였을 때 그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성종 19년(1488)에 명나라 사신으로 왔던 동월(董越)도 ‘조선의 망건은 말총으로 만든다’라고 기록하며 관심을 보였다. 그러므로 말총을 재료로 완성한 망건은 조선만의 독창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와 왕실에 필요한 망건의 수급을 위해 법적 제도를 마련하여 『경국대전』을 통해 관청에 장인을 두었다. 관자(망건에 달아 당줄을 꿰는 작은 단추 모양의 고리)는 신분과 계층을 상징하는 역할도 하였다. 『경국대전』이나 『조선부』에 따르면 관자는 품계에 따라 재료에 차등을 두어 일품은 옥, 이품은 금, 삼품은 은으로 만들도록 규정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망건 착용이 일반화되면서 값비싼 재료로 신분과 위세를 드러낼 수 있는 관자가 주목받았다.
18세기 후반 정조 대에 양반 수가 늘어 망건 수요가 많아졌고, 민간 수공업으로 대량 제작되었다. 당시 망건과 관자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망건전(網巾廛)도 여러 곳에 비약적으로 늘었다.
망건은 조선 시대 말엽까지 상투를 트는 성인 남자가 일상생활을 위해 착용하는 필수품이었다. 망건의 제작지로 유명했던 곳은 망건의 착용자가 많았던 서울을 비롯하여 말총의 구입이 용이하였던 제주와 김제 등지였다. 하지만 1895년 단발령이 내린 뒤부터는 망건의 수요층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망건 제작과정
편자 짜기
망건의 가장 아래쪽에서 이마를 졸라매는 부분인 편자를 짜는 과정이다. 편자들의 무명 발걸이를 왼발에 끼우고 반대쪽의 무명끈을 가슴에 메어 고정시킨다. 말총 80올을 40올씩 나눠 날줄로 삼고 좌우 각각 4올과 3올을 씨줄로 하여 지그재그로 교차하면서 약 70센티미터 길이로 편자를 짠다.
바닥 뜨기
완성된 편자를 몸골에 끼우고 이마 쪽 성근 부분의 앞뜨기, 머리카락을 감싸는 조밀한 부분을 만드는 뒤뜨기, 앞과 뒤를 연결하는 설주뜨기를 한다.
당 걸기
망건의 상부를 졸라매는 부분인 ‘당’을 짜는 과정으로 몸골에서 바닥 뜨기가 끝난 망건을 당골로 옮겨 테를 감싸는 코를 만들면서 일일이 걸어 나가면서 망건을 짠다. 이때에는 말총이 잘 늘어날 수 있도록 물을 적시면서 작업을 한다.
감싸기와 관자 달기
당 걸기가 끝나면 고정줄을 걸어 삶은 뒤에 감싸기를 하고, 관자를 달아 완성한다.
전승 현황
망건장은 1980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신규 지정되고 당시 전라북도 완주군에 살던 임덕수(1905~1985)를 보유자로 인정하였다. 1985년 임덕수 보유자가 별세한 후, 제주시 삼양동에 망건을 짜는 장인이 조사되어 1987년 이수여(1923~2020)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2009년 이수여가 명예보유자가 된 후 2009년 강전향(1943년생), 2024년 전영인(1969년생)이 보유자로 인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수여 보유자는 제주시 삼양동에서 망건을 짜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망건을 자연스럽게 접했다. 이수여는 1986년 전승공예대전에서 망건 입선, 탕건 장려상을 받았다. 1987년 국가무형유산 망건장 기능보유자로 인정을 받은 후 더욱 폭넓게 활동하였다. 탐라문화제를 비롯하여 국내 공예 전시와 시연 행사에 참여하였으며, 국가무형유산 망건장 공개행사 등 다수의 기획행사에 출연하여 망건 제작을 선보였다.
강전향은 어려서부터 어머니 이수여를 도우며 어깨너머로 망건 제작기술을 익혀왔다. 이수여 보유자가 활발히 전승 활동을 펼치다 2009년 명예보유자로 인정되고, 이수여의 뒤를 이어 강전향이 국가무형유산 망건장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강전향은 이수여의 뒤를 이어 제주 망건의 전통을 손색없이 전수하고 있다.
현재 강전향 보유자는 기획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망건 제작기술의 전승 보존을 위해 힘쓰고 있다. 특히 탐라문화제 행사마다 작품 전시 및 시연을 해왔으며, 2024년 7월에는 망건장 보유자 강전향 기획 전시 및 시연 행사를 주최했고, 2022년부터 시작된 제주 무형유산대전에서 도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망건을 전시, 시연해오고 있다.
강전향 보유자의 딸인 전영인(1969년생)은 어릴 적부터 할머니인 故이수여(명예 보유자)와 어머니 강전향(현 망건장 보유자)의 망건 제작 과정을 곁에서 보고 자라며 자연스럽게 익혔다. 전영인은 특히 망건장의 핵심기술인 편자 짜기, 당 걸기의 기량을 향상한 결과, 2024년 망건장 기능보유자로 인정을 받았다. 이로써 제주도에서 이수여, 강전향, 전영인 3대에 걸쳐 국가무형유산 보유자를 배출하게 되었다. 현재 망건장 이수자 2명, 전수 장학생 2명, 전수생 1명이 망건 제작의 전통을 면면히 계승하고 있다.
의의 및 평가
망건은 조선 시대 성인 남성들의 존재감과 선비들의 미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던 전통 의관(衣冠)의 하나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망건은 값비싼 비단이 아니라 경제적이고 위생적인 말총으로 망건을 제작한다는 훌륭한 발상과 한 코 한 코 정성을 다해 망건을 결어내는 솜씨는 오래도록 전승 보전할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 망건장(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망건(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장경희)
- 『망건장-중요무형문화재 제66호』(장경희, 화산문화, 2001)
- 『ᄌᆞᆯ앙ᄌᆞᆯ앙 모자 ᄌᆞᆯ아사』(제주대학교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