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건은 말총을 재료로 만들어 앞쪽은 낮고 뒤쪽은 높은 형상으로, 앞쪽 중간에 턱이 있는 쓰개이다. 이를 만드는 장인을 탕건장이라 한다.
개요
탕건은 말총을 재료로 만들어 앞쪽은 낮고 뒤쪽은 높은 형상으로, 앞쪽 중간에 턱이 있는 쓰개이다. 탕건장은 탕건을 제작하는 장인을 가리키며, 1980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재 김혜정(여, 1946년생)이 탕건장 기능보유자로 탕건 제작기술의 맥을 잇고 있다.
내용 및 특징
조선 시대의 양반 사대부들은 망건 위에 탕건을 쓰고 그 위에 반드시 갓을 얹어 쓰는 것을 관례로 여겼다. 조선 말기에는 서민들에게 갓의 착용이 허용되고, 집안에서 갓 대신 탕건만 쓰는 풍조가 늘어나면서 점차 독립된 모자의 구실을 하게 되었다.
말총의 성질은 형태가 뒤틀어지지 않고 부드러우면서 견고해서 탕건 제작에 적합하다. 게다가 말총은 땀이나 기름때에 잘 오염되지 않아 위생적이며 세탁이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다.
탕건은 결을 내는 방법에 따라 홑탕건과 겹탕건, 바둑탕건으로 분류된다. 홑탕건은 가로무늬가 일자로 하나의 홑무늬를 이룬 것이고, 겹탕건은 가로무늬가 지그재그 양방향으로 겹무늬를 이룬 것이다. 바둑탕건의 이마 부분은 겹탕건의 무늬를 하고, 상단에 바둑 모양으로 아름다운 사각 무늬를 놓은 것인데, 이는 탕건이 독립된 모자 구실을 함에 따라 장식화된 것이다.
제작 시에는 골〔木型〕을 크기에 따라 받쳐놓고 모양을 잡아가며 결은 뒤, 외형을 견고하게 굳히기 위하여 골에 끼운 채로 삶아내어 완성한다. 가장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은 말총을 알맞은 힘으로 당기고 맺는 힘의 안배이다. 외형이 완성되면 참먹을 진하게 갈아 바르고 햇볕에 말리는 묵염처리(墨染處理)로 마감한다.
탕건은 평안도의 정주・안주와 호남의 논산・김제 및 제주도가 명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제주도의 조랑말 말총은 가늘고 질기며 부드럽고 매끈하기 때문에 최고의 재료로 꼽혔다. 제주도는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탕건을 만드는 관모공예가 성행하였다. 특히 제주목 주변의 화북, 삼양, 신흥, 조천, 함덕 마을을 중심으로 탕건을 비롯한 망건, 총모자, 양태 등의 제작 작업이 이루어졌다. 조선 말기에는 한 해 제주도에서 수만 개의 탕건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탕건 작업은 밭일이나 바깥일을 보다가 여유 있을 때마다 하거나, 동네 ‘일청’ 또는 탕건청에 모여서 하기도 했다. 탕건청에서는 각자 작업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재능이 뛰어난 사람에 의해 탕건 제작기술이 전수되었다.
한편 1895년 단발령 이후 의관 풍속이 크게 변모하면서 탕건의 수요 기반이 해체되기 시작하였으며, 탕건 제작기술이 점차 쇠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탕건을 제작하는 일은 일제강점기까지 생계 수단으로 그나마 유지되다가 1950년대 이후 말총 공예가 급격히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그나마 그 일을 부업으로 해서 탕건 제작기술을 익혀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탕건 제작과정
말총 고르기
말총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서 그늘에 말린 뒤 질 좋은 말총만 골라낸다.
술기 끼우기
술기는 탕건의 맨 아래, 시작 부분을 말한다. 물에서 불린 말총을 탕건골 둘레의 길이만큼 매듭을 짓고, 매듭지은 말총의 반을 나눠서 탕건골에 끼운다.
줄머리 놓기
말총바늘에 한 가닥 말총을 걸어서 탕건골에 끼워진 술기를 위쪽에서 밑으로 감치면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맺어 나간다.
맺어 가기
굵은 말총 가닥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매듭을 맺어 나간다.
줄 서이기
고른 줄무늬가 나도록 탕건의 세로줄을 세워 고르게 정돈한다.
삶고 건조하기
탕건 모양을 고정하기 위해 탕건을 탕건골에 끼워서 삶고 그늘에 말린다.
전승 현황
제주도에서 탕건 짜는 기술은 주로 모녀간에 세습되었다. 탕건을 짜는 일은 별도의 작업장을 마련하지 않고 가정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탕건일을 접하고 기술을 익혔다. 이른 나이부터 시작된 탕건일은 10대 중반이 되면 한 사람의 몫을 스스로 해냈다.
현재 탕건을 제작하는 기술은 몇 명에 의하여 겨우 전승되고 있다. 김공춘(金功春)은 전통 탕건 제작기술의 원형을 잘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여 1980년 국가무형유산으로 탕건장을 지정할 당시 기능보유자로 인정을 받았다.
김공춘(여, 1919년생)은 할머니, 고모와 함께 살면서 탕건 제작기술을 배웠다. 13~14세부터는 내다 팔 수 있을 정도로 기능이 향상되었다. 김공춘 선생은 1975년 제3회 육영수여사배 전국공예품경진대회에 입상하면서 탕건 제작 솜씨가 뛰어남을 인정받았다. 1980년에 탕건장 기능보유자가 되었으며, 매년 전승공예대전 및 기능보유자 작품전에 탕건이나 정자관 등을 빠짐없이 출품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다 2009년 2월 명예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김공춘 선생이 명예 보유자로 인정되면서 그의 딸인 김혜정(여, 1946년생) 선생이 2009년 국가무형유산 탕건장 2대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탕건 제작기술의 맥을 잇고 있다. 김혜정 선생은 10여 세 전후의 어린 나이에 탕건을 시작하였으며, 어머니의 솜씨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탕건을 만들어 왔다.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전승공예대전에 연속 출품하여 매번 입선하였고, 1986년 탕건장 이수자를 거쳐, 2009년 탕건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세계유산 축전, 탐라문화제 등 각종 행사 참여, 국가무형유산 기능보유자 합동 공개행사 전시 및 시연 등 국내외에서 전승 활동을 활발히 해오고 있다.
현재 제주도 탕건은 전승 교육사와 이수자가 각 1명이 있으며, 전수생 2명과 함께 탕건 제작기술의 전승과 보전에 힘쓰고 있다.
의의 및 평가
탕건은 조선 시대 양반 사대부들의 예법과 격식을 유지하는 필수품으로 집안에서나 외출할 때 갓 아래에 받쳐 쓰거나, 관복을 입을 때 착용했던 관모라고 할 수 있다. 탕건은 단순한 모자를 넘어 조선 시대 양반의 정체성과 품격, 전통적 예법을 드러내는 문화적 상징물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 탕건장(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탕건(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탕건장-중요무형문화재 제67호』(장경희, 화산문화, 2000)
- 『ᄌᆞᆯ앙ᄌᆞᆯ앙 모자 ᄌᆞᆯ아사』(제주대학교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 2024)